[정병국 칼럼] “시위자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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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칼럼] “시위자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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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자를 영어로 표현하면 “Protester”가 될 것이다. 시위자를 우리는 데모하는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다. 시위는 “남에게 겁을 주거나 인정을 받기 위하여 힘이나 기세를 보이는 것”(한국어사전 참조)을 말한다. 시위자는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시위는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단체로 하는 것이 힘이 되고 더욱 큰 영향을 끼친다. 소위 데모를 하는 것인데 우리는 4.19의거(필자는 직접 참가)를 데모가 승리한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데모가 성공하려면 우선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그 목표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즉 명분이 분명해야 한다. 4.19의거는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장기집권을 반대하는 내용의 시위였다. 그래서 전 국민이 호응하고 전국적으로 데모가 일어나 결국 대통령이 하야하고 부정선거의 진범들을 처형했다. 부정선거는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고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미국 각 도시에서 일어나는 시위는 무법천지를 방불케 하는 행동이다. 경찰이 한 흑인(조지 플로이드)에게 수갑을 채운 채 너무 심하게 무릎으로 목을 눌러 결국 죽게 만들었다. 미네소타에서 일어난 이 사건의 부당성이 전국으로 번지면서 시위가 폭동으로 변하여 경찰차를 불사르고 상점을 부수고 들어가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영상으로 보는데 정말 시위가 아니라 완전히 폭동으로 둔갑을 했다. 수많은 시위대의 시위가 매일 계속되고 있다. 큰 도시들은 통행금지 시간을 선포하고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게 했다. 이런 폭동성 시위는 국민들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 시위대 배후에 어떤 큰 힘이 시위대를 지원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인종차별의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백인 우월주의가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색갈론을 겉으로 들고 나오지는 않지만 어떤 사건이 터지면 흑백이 뚜렷하게 갈린다. 그런데 이번 시위 참가자는 흑인보다 백인이 더 많은 것 같다.

이와 흡사한 사건이 지난 3월에 타코마에서도 일어났다. 그 당시 뉴스를 보면 30대 흑인이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수갑을 찬 채로 사망하여 제2의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타코마 시 당국에 따르면 마누엘 엘리스(33세)가 지난 3월3일 타코마 경찰차를 발로 차는 등 공격을 가하다가 경찰관 2명으로부터 제압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갑이 채워졌고 바닥에 엎드린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어스카운티 검시소는 엘리스가 필로폰 중독 상태이긴 하지만 사망 원인은 신체적 압박에 의한 저산소증, 즉 호흡 곤란으로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의 사망 원인은 살해사건으로 규정했다.

이에 그의 유가족과 타코마 시위대들은 조지 플로이드와 똑같이 경찰에 의해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정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타코마시도 해당 경찰관에 대해 휴가조치를 한 뒤 진상조사에 나섰다. 타코마 시장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갖고 엘리스의 사망 원인을 정확하게 조사하고 있다면서 유가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은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미국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하나님은 인간을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똑같이 귀하고 사랑스럽게 창조하셨다.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 온 미국이 요즘엔 인종 차별로 인한 사건들이 터지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그 귀추가 또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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