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 칼럼] 現代社會에서 심해지는 空虛感 - 시애틀 한인 문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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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열모 칼럼] 現代社會에서 심해지는 空虛感 - 시애틀 한인 문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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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社會에서 심해지는 空虛感


오늘날 우리는 지난날의 보릿고개 시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먹고, 잘 살면서도 마음은 오히려 허전하고 쫓기듯이 초조하다. 춥고 배고프던 보릿고개 시절에는 배는 비록 고프면서도 마음은 항상 편하고 넉넉했는데 산해진미를 먹고 마시는 현대사회에서는 배는 부른데 마음은 배고픈듯이 허전하니 그 까닭이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 한국문단의 원로였던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선생(1903–1982)은 일찍이 다음과 같이 비유한 바 있다. “농사짓는 사람은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도 겨우 보리밥에 김치만 먹는데도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배부르고 행복을 느끼는 데 반해, 부자 동네에서 얻어먹는 거지는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면서 갖가지 좋은 음식을 얻어다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듯이 허전한 현상과 같다”며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아득한 옛날에는 서당에서 근엄한 훈장(訓長)의 가르침으로 고작 천자문(千字文)이나 백구시(百句詩), 명심보감(明心寶鑑) 정도만 배워도 마치 득도라도 하듯이 기쁘고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오늘의 학교 교육에서는 수없이 많은 과목을 여러 선생으로부터 배우면서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과 같은 이치”라고 묘사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까닭을 이은상 선생은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옛날의 서당훈장은 제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단순히 학문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人性과 덕성까지 함양하고자 애썼다. 그런데 오늘의 학교 교육에서는 다양한 과목을 여러 담당교사가 번갈아 나타나 그냥 전달하고 사라지니 인성계발(人性啓發)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이은상 선생은 역설했던 것이다  

이은상 선생의 이 말을 풀이하면 지난날의 서당공부는 머리만 채워주는 단순한 지식(知識) 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채워주는 지혜(智慧)를 종합적으로 가르쳐줬는데 오늘의 학교 교육에서는 단순히 머리만 채워두기 때문에 허전해진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날의 농경사회에서는 오묘한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가꾸면서 소박하게 살았으니 오만하거나 탐욕이 없었기 때문에 비록 가난하면서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오늘의 산업사회에서 우리는 한 없는 탐욕으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니 인정은 메마르고 불평과 스트레스만 쌓이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과학 문명의 혜택으로 외형으로는 부유하고 편리하게 살고 있는 듯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연유에서 오늘날 지구촌의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보다 행복지수가 오히려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의 산업사회를 좋든 싫든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만족감을 느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것은 허전한 가슴의 공허감을 채우는 일이다. 이 공허감을 채우는 길은 물질보다 정신문화의 창달에 있다. 사실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물질 만능 또는 과학기술 만능에 사로잡혀 정신문화를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나타나 근년에 학계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우려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우리 사회는 황금만능 풍조가 사라지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저속하게 변질된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던 나라가 경제개발에 성공해 갑자기 부자나라가 되다 보니 시민의 의식 수준이 경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졸부가 여기저기 나타나 돈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풍조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아들 졸부는 곳곳에서 돈 자랑하면서 거들먹거려 우리 사회를 오염시켰다. 

우리가 바라는 정신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책을 통해서 교양을 쌓는 일이라고 하겠다. 우리 사회가 진정 선진국이 되고자 한다면 이제 경제개발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한 정신문화의 창달에도 힘쓴다면 그 효과는 지대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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