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하늘로 돌아가리라”

전문가 칼럼

[정병국칼럼]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천상병: 1930–1993) 


아주 간단한 시지만 이 시 속에는 우리네 마음과 가슴이 서려 있다. 


순수한 그는 원수도 사랑하였다. 그는 정치적 조작으로 이뤄진 동백림사건만 아니었어도 그의 몸이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무서운 기관에 붙잡혀 가서 무지하게 매를 맞았다. 

아이를 생산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전기고문도 당했다. 

그는 정부에 대한 미움이 엄청 컸겠지만, 그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막걸리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길에서 만나는 지인들에게 일백 원 혹은 이백 원을 요구할 뿐이었다. 


몸은 그렇게 심하게 망가졌지만 그의 속 사람은 아주 건강하고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사람이 자기를 학대하고 매질에 고문을 당하면 사람을 미워할 터인데 천상병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고 늘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이었다. 


거창하게 부풀려서 표현한다면 그는 원수도 사랑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우리네 나이 또래가 사라지면 개인적으로 천상병을 알던 사람들도 다 사라질 것이다. 


그의 글 중에 “저승 가는데 돈이 든다면”이란 시를 소개한다. 


“아버지 어머니는/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 못하나?/ 생각하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가난은 내 직업이라며 가난을 축복이자 긍지로 삼았던 시인이었다. 


가난했기에 막걸리 한 사발, 담배 한 갑, 버스표 한 장에 행복해 했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라며 늘 웃음을 머금고 살았다. 


천상병은 오늘날과 같은 금전만능 시대에 천상시인이라고 어느 평론가가 말했다. 


그는 살아생전 안록산의 난으로 가난하게 타향을 떠돌던 두보(712-770, 당나라의 시인)의 시를 가장 좋아했다. 


다음은 김동길 교수의 “시인 천상병 생각”의 일부를 소개한다. 


'오늘 아침 문득 시인 천상병 생각이 났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가 어쩌다 동백림 간첩 사건에 걸려들어 여러 해 감옥 신세도 져야 했고 자기말 대로라면 전기고문을 하도 심하게 당해서 말도 어눌해 졌고 자기 체내의 남성이 다 죽어서 “선생님 저는 애도 못낳습니다.”라며 익살스럽게 웃기던 그 얼굴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가 쓴 시 가운데 <저승 가는데도 돈이 든다면>이라는 시에서 “저승 가는 데도 돈이 든다면, 나는 여비가 없어서 저승에도 못 가나”라고 한 그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닿아서 그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중략) 내가 사는 신촌 집에도 한두 번 왔습니다. 자그마하고 예쁘장한 부인이 있어서 둘이 함께 왔었습니다. 술을 하도 좋아해서 집에 있던 조니 워커를 한 병 선물했습니다. 


그다음에 왔을 때 그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선생님이 주신 양주를 저는 마셔보지도 못했습니다. 저 사람이(자기의 아내를 가리키며) 그건 비싼 술이니까 팔아서 막걸리나 사서 마시라고 했어요.” 그 한마디를 하면서 그 일그러진, 그러나 순박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활짝 웃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 졌을 때 그의 시 <하늘로 올라가리라>, 일명 귀천을 떠올렸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올라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선생님, 예수님도 가난하셨지요. 저도가난합니다.” 그의 한 마디가 오늘 아침에도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천상병은 일본 효고현 출생이며 원적지는 경상남도 마산이다. 


1949년 마산중학교 5학년 때 시 <공상>외 1편으로 시인으로 추천받았다. 

1952년 “문예”지에 “강물”,“갈매기” 등을 발표했다.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귀천”으로 유명해졌다. 


친구들로부터 막걸리 값으로 받은 500원, 1,000원이 간첩에게 받은 공작금으로 둔갑을 하여 중앙정보부에 잡혀가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의 시 행복의 마지막 구절을 소개하면서 내 칼럼을 마친다.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있겠는가!” 요즘처럼 세상이 어수선하고 불행한 시기에 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한결 평화스럽고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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