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마 제일침레교회] Return (남궁곤 목사)

전문가 칼럼

[타코마 제일침레교회] Return (남궁곤 목사)

본문: 룻기1:1-6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대의 이야기로서, 룻기 1장에 나오는 엘리멜렉과 자족들은 자신의 눈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엘리멜렉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입니다. 아주 신앙적인 이름이었지만, 엘리멜렉의 행동은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의 왕이 아니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다 베들레헴의 땅에 흉년이 들자, 곧바로 양식을 찾아서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이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그 땅에 흉년이 들더라도 목숨을 걸고 그 땅을 지켰어야 했는데, 내 힘으로 어떻게 해서든 먹고 살아보겠다고 하나님 주신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으로 간 것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엘리멜렉의 두 아들은 이방 여인이 모압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이 역시 율법에서 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방 문화에 동화되어서 율법을 거슬러, 모압 여인을 아내로 삼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대로 행하며 결정하라고 요구합니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먹을 것을 찾아 나서고, 결혼을 통하여 가족을 확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하나님 없이 우리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결정한 육신의 눈에서 온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인생의 앞에는 고난과 어려움이 분명히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부터 시작하여 시시콜콜한 많은 인생의 문제에 우리는 직면합니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결정하여 행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따르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놓고 그 말씀을 스펙트럼 삼아서 삶의 모든 순간을 말씀에 투영하고 적용하여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삶입니다. 모든 것을 육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결정했던 엘리멜렉과 그의 가족의 이주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그들은 모압에서 영적인 말씀을 잃었고, 이방 민족의 나그네 된 삶을 살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모압에서 엘리멜렉과 두 아들은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제는 남겨진 가족을 지켜줄 남자 없이 이방에서 빈털털이의 나그네로 살게 되었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기대한 이주였으나,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육신의 눈으로 결정한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과 고통을 가져다주어, 엘리멜렉의 아내였던 나오미와 두 며느리에게는 모든 소망이 끊어져 버린 상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눈에 옳은 대로 행하여 결국, 인생의 비참함을 경험하고 있던 사사시대에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고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룻 1:6) 나오미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 모든 소망이 끊겨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주의 깊게 돌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흉년으로 고생하던 이스라엘 땅을 돌보아 주시어, 양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오미에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양식을 주신다 함은 “복음”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절망의 끝에 있던 사람들을 위하여 친히 직접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 말씀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민족으로부터 압제와 고통을 당할 때 사사들을 통하여 직접 싸우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영원한 죽음에 거하여 소망을 잃고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친히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과 고난의 시간에 처해 있는 우리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일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이 지금 가장 절망적이고 비참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나요? 소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없는 고통과 고난 중에 여러분이 있으신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돌보시고, 여러분에게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한 복음의 메시지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소망을 이루어 주십니다. 아직 예수님을 모르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분이 있다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으시고, 예수님을 마음의 구주로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즉 하나님께서 돌보시며 양식을 공급하신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알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Return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룻 1:6) 현대인의 성경은 이 부분을 “나오미가 모압 땅을 떠나기로 작정하였다.”고 번역했습니다. 

 

돌아오다 라는 히브리어 슈브 שוב))는 나오미가 단순하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의미가 아니라, 나오미의 돌아옴은 자신이 지금 잘못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곳에서 떠나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눈에 보기 좋은대로 결정했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대로 바라보는 영안의 눈으로 다시 살겠다고 하는 돌아섬이었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떠난 고향을 빈털털이로 다시 오는 것, 그것도 이방 모압 여인인 며느리와 함께 돌아오는 것은 어쩌면 유대인이었던 나오미에게 수치스러운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에게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났다가 인생의 쓴 맛 마라를 느꼈지만,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 길은, 하나님께서 고통과 슬픔을 기쁨과 생명으로 바꾸어 주신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마라가 다시 나오미가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것의 의미 아니겠습니까? 룻기 1:15-16절에서 룻은 비록 이방 모압 여인이었지만, 자신의 신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룻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영안을 갖고 있었습니다. 룻이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함께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은 그녀가 어떠한 신앙을 지금 갖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오미처럼 인생의 고통과 아픔의 쓴 맛 마라의 상황에 있고, 룻처럼 하나님을 모르며 하나님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우리에게 들려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나오미와 룻과 같이,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정리하고, 잘못된 그곳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룻기에 사용된 “돌아가다” 라는 히브리어 슈브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룻 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나오미를 회복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도 회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이방 여인이었던 룻을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 삼아주셨던 것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우리 교회와 우리 나라를 주님이 다시 세우시고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눈을 들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바라보며 그분의 품으로 돌아가는 삶을 사시기를 권면 드립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실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하고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대해 주시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나눔 적용 질문

1. 어렵고 힘든 고난의 상황에서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경험을 나누어 보세요.  

2. 모든 소망이 끊어져 버린 상황에서 나를 위해 일하셨던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나누어 보세요. 

3. 하나님께서 지금 내가 어디에서 돌아서서, 어디로 돌아가기를 바라시나요? 

4.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내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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