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웰페어(2)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웰페어(2)

<지난 호에 이어>


며칠후 00의 허락을 받은후 00의 오빠에게 00의 소식을 전하며 00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화번호를 주며 통화를 해도 좋다는 본인의 이야기를 하니 00의 오빠가 묻는다. 


내 동생은 어떻게 지내는가? 하고

나는 동생이 오빠가 살고 있는 그곳으로 너무나 가고 싶어하는 데 혹시 여동생이 그리로 갈 수 있느냐 물어보니?

오빠의 대답은 자기는 가정이 있는데 자기의 부인과 두 아이들이 함께 살기에 동생이 와도 함께 지낼 수가 없고 또한 동생이 정신질환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자기의 부인이 동생이 오는 것을 절대로 반대하기 때문에 이곳에 와도 지낼 곳이 없어서 올 수가 없단다.


나는 알았다고 한 후 그런데 00가 도대체 얘기를 하지 않아서 어떻게 우리 프로그램에 들어온 건지 알 수가 없는데 얘기를 좀 해줄 수가 있느냐고 질문을 하니 자기 동생이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에는 정신질환이 있어도 그리 심하지 않았었단다.


동생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약간의 경증으로 헛것을 보다가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고는 했는데 플로리다에서 자기네들 가족들하고 잘 지내다가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인도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겠다고 해서 모든 가족들이 반대를 했는데(우선 남자의 신분이 확실치가 않고 남자가 정상적인데 아주 잘생기고 괜찮아 보이는데 왜 자기 동생하고 결혼을 하려는가?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동생이 우기고 동생 신랑감도 자기의 동생에게 잘 대해 줄 거라고 말하면서 결혼을 하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오빠의 가족들은 약간의 정신질환이 있어도 혼기가 차고 남은 여동생을 잘 데리고 살겠다는 남자의 말에 속아 넘어가서  플로리다에서 결혼식도 성대히 열어서 결혼을 시켜주었는데 그곳 가까운 동네에서 함께 살던 동생 부부가 별안간 시애틀로 이사 간다고 해서 동생을 열심히 말려보았는데 자기네는 시애틀로 가서 잘 살거라고 해서 막을 수가 없어서 보내주었는데 동생 남편이 시애틀로 이주하고 난 얼마 후에 영주권을 받고는 동생을 아무것도 지닌 것이 없이 시애틀 다운타운 거리에 동생을 버리고서는 다른 주로 이사를 가버렸다며(이 부분에서는 오빠가 울먹거리며 얘기를 하는데 아마도 그 나쁜 놈이 영주권 때문에 우리 동생을 이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여동생은 길거리로 나서게 된 것 같다면서 동생이 자기에게 돌아와도 이곳에서는 동생을 돌볼 수가 없다며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곳에 있는 프로그램이 좋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또 이해가 되어서 그럼 알았다 라고 말한 후 전화를 마치었다.


한 달 전 주정부 소셜 시큐리티 사무실에서 내 고객 00를 담당하는 담당자가 나에게 메시지를 남겼었다.

하이 레지나, 전화해줘?

나는 조용한 시간에 00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담당자인 헬렌이 전화를 받자마자 나에게 하는 말은 레지나, 다음 달부터는 네 고객 00는 웰페어가 끊기고 또 메디캐이드 혜택도 끊을 수밖에 없단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질문을 하니?


담당자의 얘기인즉슨 자기네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내 고객 00가 은행 어카운트가 뱅크000에 있는데 이곳의 개인 어카운트에 저금한 돈 1만3000달러가 있으니 웰페어는 2000달러 이상 있으면 안 되는 것 알지?라고 묻는다.


나는 아니, 그럴 리가 없지!라고 대답을 하며 00의 은행 구좌는 우리 회사사무실에서 갖고 있으며 우리 사무실이 페이(돈을 관리하는 사람)인데 그리고 매주 우리가 살고 있는 그룹 홈 렌트비 421달러를 빼고 나머지를 매주 66달러씩 주는데? 어떻게 그 많은 돈이 있을 수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담당자는 레지나 너는 모르겠지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는 정확한 거야 라면서 00의 뱅크의 어카운트 넘버를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나는 다음날 직원회의 때 내 고객의 은행 잔고에 대하여 토론을 해보며 회의결과는 그 돈을 돌려주든지 아니면 본인이 필요한 것들을 구입한 후 영수증을 첨부해서 설명을 하던지 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는데 1만3000달러라는 돈을 혼자서 살고 있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00가 제대로 다 쓸 수도 없는 일이고 또 그 돈을 다 사용하려면 누군가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을 하고 다음 주에 00를 방문을 하면서 000에게 설명을 하려니 역시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00라 설명이 되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랭귀지 라인을 통하여 도움을 청해야 했기에 두 주 전에 랭귀지 라인에게 예약을 한후 방글라데시 말을 사용하는 통역사를 회사에서 고용한 후에 이날 내 고객에게 설명을 하게 된 것이었는데 오늘 00에게 통역사와 내가 3시간을 설득을하는데 00는도대체 우리의 설명이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절대로 싫단다.


내가 안 쓰고 모아서 만든 돈인데 왜 돈을 한꺼번에 써야되는가? 

아니면 왜 돈을 돌려주어야 하는가?가 도대체 이해가 되지를 않는 것이었다. 

나는 통역사에게 웰페어를 받는 목적, 이유 그리고 은행에 돈이 있게 되면 현재 받고 있는 혜택뿐만 아니라 우리가 제공하고 있는 이 그룹홈에서 살 수가 없다고 설명을 해주고 또 설명을 해주고(3시간째 되어가니 입이 마르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통역사는 통역을 하기를 3시간째가 되어서야 내 고객 00는 이해가 되었는지 그럼 그 돈으로 전부 그로서리를 사겠단다.  


그런데 그럼 그 많은 그로서리는 어디다 둘 것인데?라는 내 질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내 고객에게 그럼 이 돈을 정부에다 모두 돌려주고 매달 받는 혜택을 그냥 지속적으로 받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니 그때야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었는지 내 고객 00가 그리하겠다며 당장 은행으로 가잔다.


아마도 그 돈 때문에 모든 혜택이 중지되고 들어오는 수입이 없을 경우 거주하는 곳에서도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해한 듯하였다.


이곳에는 나를 기다리는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고객들 3명을 오늘 중으로 만나야 하는데 오늘은 그냥 모든 것을 제쳐두고 옷을 입고 길을 나서는 내 고객 00를 따라나섰다. 


날씨는 비가 올 것 같아서 우중충하고 바람도 차가운데 시애틀 다운타운은 바닷바람 때문에 더 기온이 차다) 가벼운 사리만 입은 00는 춥지도 않은지 아무 표정이 없이 앞만 보고 걸어가는데 나는 내 고객 00 뒤를 쫓아가면서 궁금증이 생겼었다.


아니, 어떻게 은행구좌를 열었을까?

누가 구좌를 열어주었을까?

00가 살고 있는 그룹홈에서 길을 나선지가 벌써 30분이 넘어서 우리는 걷는 중인데 도대체 은행은 어디이고 00는 어떻게 은행을 찾아올 수가 있었던 걸까? 

또 한 질문은 00가 1만3000달러를 모았다는 얘기는 매주 주는 돈 60여 달러를 몇 년을 모았다는 얘기인데 어떻게 소셜시큐리티 사무실에서 00의 은행구좌에 돈이 있는 것을 이제야 알 수가 있다는 얘기일까? 


여러 가지 궁금하기도 한데 가벼운 사리에 슬리퍼만 걸친 내 고객 00는 주위환경하고는 무관한 채 앞만 보고 계속 걸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3시간을 00를 설득하느라 이미 지쳐있었고 또 점심시간도 훨씬 지나버려서 기운도 없고 배도 고픈데 00의 가는 목적지를 알 수 없으나 00가 마음이 변하기 전에 빨리 해결을 해보려고 00를 따라가는 중이었는데 다운타운 지역에서 일을 오래 해서인지 여기저기 몇 명씩 모여있는 우리 홈리스 고객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하이 씨쓰터! 라며 손을 흔든다.


같은 직장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홈리스 가족들이 나하고 친해져서 여기저기서 하이 씨쓰터! 빅마마 등으로 나를 불러댄다. 


빅마마라는 호칭은 가끔씩 일 안 하는 토요일이나 주일 오후에 친구들과 컵라면과 빵을 가지고 이들에게 뜨거운 물과 함께 나누어주면서 봉사하는 시간을 보냈더니 이들이 나에게 익숙해져서 얻어진 이름이었다.


00를 따라 길을 걷는데 아무리 가도 은행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정말 산 넘고 물 건너 가야하는 거리였다. 


참으로 궁금했다. 00가 정신적인 질환으로 약을 복용하지만 그래도 정상이지 못한데 어떻게 이곳의 은행을 찾아왔는지를?

아무튼, 거의 한 시간을 걸어서 뱅크에 도착했다. 


나와 00는 은행창구로 가서 00의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창구직원에게 내 사무실 배지와 명함을 보여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00의 구좌의 모든 돈을 캐시어 체크로 소셜시큐리티 디파트먼트로 만들어 달라니 창구직원은 잠깐만 기다리라며 나와 내 고객 00의 신원조회를 한 후에 캐시어 체크를 만들어주었다.


자기 통장의 모든 돈이 캐시어 체크로 바뀌어진 체크를 받아든 내 고객 00가 별안간 눈물을 흘리면서 어눌한 말로 한 마디씩 한 마디씩 한다. 


레지나, 내가 사 먹고 싶은 것 안 사먹고 돈을 모아서 방글라데시의 배고픈 우리 엄마 아빠에게 보내주려고 한 돈인데 보낼 줄 몰라서 그냥 은행에 넣고 있었는데 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은행직원에게 이 돈의 출처 때문인데 은행스테이먼트를 떼어달라고 해서 받아 보니 이제야 돈이 은행에 들어간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내 고객 00는 매주 우리 사무실에서 주는 돈을 현금으로 1만3000달러가 되도록 갖고 있다가 두 달 전 은행에 입금을 시킨 것이었다.


아직도 궁금한 것은 내 고객 00는 망상증 환자에 지능도 약간 부족한데 어떻게 은행 구좌를 열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00의 이번 해프닝을 보면서 예전에 내 고객이었던 한국할머님이 생각났다. 


00할머님은 젊었을 때 한국에서 용산의 미군 부대에서 도우미로 일하던 중 그곳에서 오래전 소개로 알게 된 미국분과 재혼을 해 미국으로 오면서 미국 남편이 주는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서 한국의 성장한 자녀들에게 매달 돈을 부쳐달라고 해서 내가 은행에 가서 돈을 부치는 일을 도와주었는데 나중에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자 유산이 전혀 없던 남편이어서 할머니가 정부에서 주는 혜택을 받게 되었는데 그 돈 중 2/3를 한국의 자녀들에게 보내려고 본인은 정부아파트에 살면서 차이나타운 마켓 등을 돌면서 버리는 야채를 갖다가 국도 끓여먹고 푸드뱅크에서 주는 것으로만 살아가던 할머님이셨다. 


나중에 내가 웰페어는 미국 정부가 할머님을 위하여서 주는 것이지 그 돈은 자녀들에게 보내면 안 된다고 말하며 할머님에게 사드시고 싶으신 것 다 사드셔야 한다고 설명을 해드리며 저는 그 돈을 할머니 자식들에게 보내드릴 수가 없다고 하니(미국에서 웰페어 받는 분들의 법이다) 이분이 나에게 사정 사정을 하며 레지나씨, 자식이 어려운데 어떻게 내가 이 돈을 다 써요!라며 눈물짓던 생각이 났다. 


할머님은 내가 웰페어 모은 돈을 한국으로 보낼줄 수가 없다고 하자 아마도 다른 루트를 통해서 돈을 지속적으로 보낸듯하다.


할머님은 오래전 운명을 달리하셨는 데 당뇨병으로 인하여 발가락을 4개나 절단하시고도 다운타운에 유모차(물건을 담으려고 굿윌스토어에서 구해서)를 끌고 다니며 콜라 캔도 줍고 야채도 집어가시던 그 할머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또 그때의 내 고객 할머님 중에 한 노인부부가 계셨는데 가끔씩 이분들이 살고 있는 노인아파트를 방문해보면 이분들의 냉장고 안에는 푸드뱅크에서 주는 음식들만 있고 음식을 구입했을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어느 추석이 가까운 날에 이분들을 방문하면서 내가 이분들에게 배 한 박스를 선물로 사드리고 싶어서 배 한 박스를 들고 이곳을 방문했는데 연세가 팔순이 넘어서신 노부부가 눈물겹게 배를 반기며 하시는 말씀에 내 가슴이 너무 아팠었다.


이 노인 부부는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두 분이 받으시는 웰페어의 대리수혜자가 아들인데 아들이 은행으로 아파트 렌트 값만 페이해 주고 한 달에 한 번 쌀 사다주고 나면 나머지 돈은 자기들 부부에게 전혀 주지를 않아서 자기 부부는 돈이 없다며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들도 너무 많은데 라면서 말씀을 흐리시길래 할머니 그럼 아드님 연락처 주세요?


부모님이 받으시는 웰페어 받아서 쓰시는 것 불법이구요. 할머님 할아버님은 당연히 그 돈을 본인들이 받아서 사용하셔야 합니다 라고 설명드리니 이 노부부 눈에 눈물이 그득히 고이며   하시는 말씀에 내 가슴이 미어져 왔다. 


아니, 레지나씨 얼매나 아들이 돈이 귀했으면 우리 부부 돈을 쓰겠소!


더구나 그것을 사용하면 불법이라니 그냥 냅두어야지 않겠소?

물론 노부부의 아들의 인포메이션을 당장 정부에 보고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노부부의 눈물 어린 부탁에 그 때에 정부에 보고를 하지 못했다.

내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사항이었다.


노부부는 내가 사가지고 간 배 한 박스에서 배를 꺼내시더니 배 껍질을 벗긴 후에 우리가 언제 이렇게 맛있는 배를 먹어보았는지 정말 달구려! 하면서 해맑게 웃으시던 모습들이 생각이 났다.


난 그때에 지금 현재 일하고 있는 킹카운티 프로그램으로 직장을 옮기고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이 노부부의 부고를 알게 되었었다.


지금 그 아들 부부는 아직도 건재하고 살고 있다.


참으로 불쌍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 아들 부부 자기들도 똑같은 부모의 입장이 되어지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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