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칼럼] 늦가을의 정취

전문가 칼럼

[동열모칼럼] 늦가을의 정취

운영자

올해도 어느덧 11월에 들어서니 가을철의 정취가 짙게 풍깁니다. 가을은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풍성한 계절이라고 예찬하지만 늙어가는 사람에게 이 가을은 고독과 공허감을 부추기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 무성하게 자라던 초목들이 한 해의 생애를 마치고 시들어가는 이 황량한 가을은 마치 황혼기에 

들어선 내 모습과도 같아서 더욱 쓸쓸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부질없는 감상(感傷)에 젖으면서 가을 산자락을 혼자 걷고 있는데 우연히 한 송이 들국화가 

나타났습니다. 낙엽이 휘날리는 삭막한 산자락에서 우연히 만난 이 한 송이 들국화가 너무도 반가워 나는 빠른 거름으로 다가갔습니다.  


혼자 외롭게 핀 이 한 송이 들국화는 떼지어 군락을 이루는 일반 야생화와는 달리 희귀한 희소가치를 느끼게 해서 더욱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연한 보라색의 이 화사한 들국화에 매료되어 나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살며시 쓰다듬어 보고서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응시합니다. 

가을바람에 한들거리는 꽃송이는 보면 볼수록 은은한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가을 한 철에만 피는 이 청아(淸雅)한 들국화는 연중 계속해서 피는 장미꽃과 뚜렷한 대조를 나타냅니다. 

장미꽃은 화려하고도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대도시의 외식적(外飾的) 아름다움이라고 한다면, 들국화는 소박하고도 수줍어하는 농촌의 내면적 아름다움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렇게 청아한 들국화는 늙어가는 이 부족한 사람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여생을 추하지 않고 자그마한 보람이라도 느끼면서 살 수 있을지 값진 삶의 지혜를 암시해 줍니다. 

사람은 본시 늙어갈수록 욕심이 심해진다고 해서 이를 노욕(老慾)이라 하고, 노욕이 심해지면 추해진다고 해서 이것을 노추(老醜)라고 한다면서 이 들국화는 주옥같은 교훈을 계속해서 암시해 줍니다.  

 

노인이 욕심을 버리면 잔소리나 우는 소리를 하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베풀려는 마음이 생겨 아무리 늙어도 품위를 잃지 않고 어른으로 대접 받는 다고 합니다. 이

 들국화는 특히 “늙을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는 격언까지 알려줍니다. 이러한 몸가짐으로 살아간다면 일상생활이 항상 즐겁고 긍정적으로 여겨져 활기가 넘치게 된다고 저 들국화가 암시해 줍니다. 


단아(端雅)한 이 들국화는 또한 우리 어머니들의 티 없이 맑은 모습을 연상케 할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소박한 경종문화와 정신문화 뿌리라고 할 농심(農心)에 대해서도 음미하게 합니다. 농심이란 글자 그대로 대자연을 벗 삼아 농사짓는 농민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농심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가꾸는 과정에서 터득한 농민의 소박한 

마음가짐이기 때문에 티 없이 맑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심은 자연이 주는 대로 거두려고 하기 때문에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니 농사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은 어제나 편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고 이 들국화는 속삭입니다.    


이 들국화는 행복의 참뜻이 무엇인지도 암시해 줍니다. 행복은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이나 억만장자의 재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오직 마음가짐 하나로 만들어간다고 합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면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며, 일상생활이 긍정적이며 낙천적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행복은 두메산골 오막살이에도 있고, 한 조각의 빵에도 있으며, 

재난의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자원봉사자의 가슴에도 있고, 약자를 도우려는 의협심도 있다고 

속삭입니다.  


이와 같이 들국화에 매료되었다가 일어나 저 가을 산자락을 바라보니 갈대숲이 보이고, 창공에는 

뭉게구름이 떠있어 가을의 정취를 한결 진하게 느끼게 합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갈대숲이 가을바람에 파도치는 풍경은 어린 시절에 또래들과 숨바꼭질 하던 아름다운 추억을 연상시킵니다. 

맑은 가을의 창공에 둥실 떠있는 저 뭉게구름에는 아득한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던 신기한 전설과 아름다운 옛 추억도 담겨져 있는 듯싶어 다시 쳐다보게 합니다. 

이날 이렇게 혼자 명상에 잠기면서 산책한 가를 산자락에는 인간사회의 갈등이나 미움은 없고, 

오직 사랑과 평화만이 감도는 지상 낙원이었기에 이 부족한 사람에게 대자연을 감상하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