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두 그릇의 포옹(抱擁)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두 그릇의 포옹(抱擁)

이성수(수필가)

 

저녁 식사를 하고 TV 연속 드라마를 보기 위해 리모컨을 켰다. 드라마는 궁금하게 끝나 다음 회를 보도록 유혹한다. 그런데 TV가 켜지지 않는다. 연속극 시간은 다 되는데 초조해진다. 전원에 연결된 콘센트를 뺐다 끼워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도 묵묵부답이다. 


몇 년 전에도 이런 경우를 당해 방송국에 문의했더니 스텝이 “TV에 딸려있는 박스(box)와의 연결 부위가 접속 불량으로 인해 전기가 불통(不通)되었기 때문에 연결 부위를 뺐다 끼워보세요”라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신통하게 작동이 된 일이 있다.


그 생각이 나서 연결 부위를 뺐다 다시 끼우니 금방 작동이 되었다. 연속극을 아내와 같이 보고 나서 아내는 설거지를 하였다.


설거지를 한참 하고 있던 아내가 그릇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양은그릇 속에 사기 대접이 들어가 꽉 끼여서 영 빠지질 않아요."


나는 그릇을 받아 들고 유심히 살펴봤다. 밖에 있는 양은그릇은 소형 전기밥통의 솥으로 지금은 고장 나 버리고 양은그릇만 쓰고 있는 별 볼 일 없는 그릇이고 안에 쏙 들어간 사기그릇은 한국산 도자기의 사기대접으로 아내가 아끼는 새 대접이다. 대접이 조금 작아 양은그릇 속으로 엎어져 두 그릇은 포옹하고 있었다.


나는 두 그릇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키가 훨씬 크고 허리둘레가 조금 큰 양은그릇이 날씬하고 우윳빛 아름다운 사기 대접에 반해 손으로 감싸 포옹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양은그릇은 오랫동안 사기대접 옆에서 몸을 스치고 닿기를 얼마나 원했을까? 설거지할 때 잠깐 몸이 마주치고 건조대에 옮겨 물기가 마르는 동안 양은그릇은 사기그릇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하지만 사랑도 잠시뿐 금방 분리되어 찬장에 옮겨지는데 양은그릇과는 족보가 달라 같은 찬장 진열대에 놓이지도 못한다. 


매일 같이 양은그릇은 설거지할 때면 아름다운 사기그릇과 잠깐 몸을 맞대다가 헤어지는 작별을 반복하곤 한다.


양은그릇은 지금은 그릇 중에 천덕꾸러기에 속한다. 한때는 스마트 전기밥솥으로 다른 그릇의 부러움을 샀지만 지금은 쓸모가 없어져 그릇 중에서 왕따 당하고 있다. 아내가 설거지하다가 사기대접을 거꾸로 양은그릇 속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고무장갑을 낀 둔한 손으로 얼른 빼려고 사기그릇을 감싸다가 놓쳐 그 압력이 양은그릇에 가해져 점점 밀착되고 이제는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기회는 이때다 하고 양은그릇은 온 힘을 다해 사기그릇을 포옹했다. 얼마나 힘 있게 끌어안았는지 뾰족한 칼끝으로, 십자드라이버 끝으로 아주 작은 그릇 틈을 비집고 분리시켜 보려 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사기대접을 포옹하고 있는 양은그릇을 엎어 놓고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양은그릇의 열전도율이 사기그릇의 열전도율보다 훨씬 높기때문에 양은그릇이 팽창하여 안에 있는 사기대접이 스르르 빠져나올 줄 알았다. 그게 과학적 해결방법이다. 또 그렇게 배워왔고 오래전에 뜨거운 물을 부어 빼낸 경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무리 물을 끓여 부어 봤지만 사기그릇이 양은그릇 품 안에서 벗어나 빠져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사랑하는 사이면 떨어지지 않게 포옹하고 있을까.


꼭 빼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 고만 포기 하세요. 사기그릇이 아깝기는 하지만....”라고 말했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릇을 빼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다. 그중 제일 확실한 것은 뜨거운 물을 붓는 것인데 그게 안 되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그릇을 만들기도 하는데 붙어 있는 것을 떼어내는 것쯤 못할쏘냐하는 생각이 들었고 기어코 빼내고야 말겠다는 오기(傲氣)가 생겼다.  


생각해 보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소위 외부에서 힘을 가하는 물리적 충격(衝擊)이다. 이 방법을 쓰지 않은 이유는 속에 있는 사기그릇이 자칫 깨질 수 있는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기대접이 깨지고 빠져나오면 내가 하는 일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기 때문이다.

우선 충격의 대상을 물병으로 택했다. 


나는 0.5L짜리 페트병에 물을 채웠다. 그리고 양은그릇을 엎어 놓고 페트병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부드러운 물병의 충격이 가해졌다. 퍽! 퍽! 하고 둔탁한 물의 마찰소리가 났다.  몇 번을 반복했다. 0.5L 물병의 충격으로는 굳게 포옹하고 있는 두 그릇이 분리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충격강도가 약(弱)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갑절이나 큰 1.0L짜리 페트병에 물을 채우고 두 손으로 내리쳤다. 물병이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가 더 둔탁(鈍濁)하게 들렸다. 힘이 배나 가해졌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물병의 충격으로는 두 그릇의 포옹을 풀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병으로는 안 되고 더 센 충격을 주기 위해 쇠망치를 쓸까 하다가 잘못하면 사기대접이 깨질 염려가 있어 대신 손칼국수 만들 때 미는 나무 방망이를 쓰기로 하였다. 


사기그릇이 손상될까 봐 수건을 방바닥에 두툼하게 깔았다. 그리고 양은그릇에도 상처가 나지 않도록 수건을 여러 개 덮고 그 위에 방망이로 충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하게 가했다. 사기그릇이 깨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소리는 물병보다 딱!~딱!~하고 맑고 무겁게 났다. 점점 세게 강도를 더해갔다. 반응이 없다. 더 세게 서너 번 때렸다. 사기대접이 깨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음에는 너더댓 번 더 때리려고 하는 순간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포옹당하고 있던 사기그릇이 스르르 분리되어 빠져나오는 미세(微細)한 소리였다. 


드디어 사기그릇이 안전하게 수건 위로 굴러떨어졌다. 상처 한 군데 없이 어여쁜 얼굴로 나를 반겼다. 한편 양은그릇은 텅 빈공간에 패배자의 모습을 한 채 나뒹굴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양은그릇은 펄펄 끓는 물에도 견디고, 물병의 매 세례도 참으며 아름다운 사기그릇을 사력(死力)을 다해 포옹했었는데 나무 방망이로 세게 얻어맞고 패배한 그 모습이 처참하게 보였다. 

 

하마터면 양은그릇과 사기대접은 포옹한 채 쓰레기통에 버려질 뻔했다. 


나는 수단과 방법을 다한 결과 포옹을 떼어 놓는데 성공해 그릇과의 씨름에서 승리를 거두어 기뻤다. 하지만 뽀얀 우윳빛깔의 예쁜 사기대접과 양은그릇과의 사랑의 포옹을 억지로 제지(制止)해 놓은 것 같아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아내는 찬장에 이 두 그릇을 나란히 진열해 놓았다. 그 중 사기대접은 이사 올 때 선물 받은 한국산 도자기세트로 아내가 아끼는 그릇이다. 본래는 양은그릇이 거기에 놓일 수 없지만 이번 포옹 사건 후로 우대(優待)한 것이다. 


나는 손을 잡고 있는 투박한 양은그릇과 날씬한 사기대접과의 사랑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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