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지난날(40년 전)의 나의 자녀들을 그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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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혜 칼럼] "지난날(40년 전)의 나의 자녀들을 그리며 "

이글은 2005년에 쓴 나의 글로 모두 부모가 된 세 자녀들을 추억하며 올린다. 


  24년 전, 1981년 12월 18일. 미국에 1세, 6세, 7세의 세 아이들을 데리고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와서 아이들이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자립하여 모두 집을 떠났다. 


가구를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던 우리는 헌 가게가 있는 것을 알아서 그곳을 다니며 꼭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아이들 옷과 운동화도 사주곤 했다.


4개월 먼저 온 아빠가 청계천 헌책방에 가서 한국어 교과서를 모두 사오라고 해서 책을 잔뜩 사가지고 와서 미국학교에 다니며 영어를 배우고 따라가기도 힘들 텐데 집에서 한국어 교과서를 부지런히 읽고 쓰게 하고 일기도 쓰게 했는데 아이들이 잘 따라 주었고 나중에는 한글로 성경도 쓰고 이곳 책방을 하는 집사님 가게에서 한국어 만화도 빌려다가 아주 재미있게 읽으면서 자랐다.


  나는 교회에서 한국어학교를 운영하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성경공부도 한국어로 가르쳤는데 나의 자녀와 장로님의 자녀들을 가르쳐서 저들이 모두 다 목사님 설교를 즉시 통역하는 인재들이 되었는데 그것은 저들이 어른들 예배를 다 참석해서 설교 말씀을 노트하는 훈련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국어를 효과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밤을 새우면서 성극을 써서 아이들이 외우게 하고 연극을 했는데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토요일 한국어학교에 가야 했고 금요일 철야 예배로 늦게 들어와서 토요일 한국어학교에 또 가고, 주일에는 교회에 가니 쉬는 날이 없다고 엄마의 자랑과 영광을 위해서 자기들을 공부시킨다고 불평도 했지만, 나중에는 모두 잘 가르쳐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시켜서 우리 지역의 받아쓰기 대회에서는 언제나 만점이었고 글짓기와 웅변대회에서도 상을 탔다.


  가족이 여행을 다니지는 못 했지만 여름과 겨울에 학생들 수련회로 바닷가에 가서 내가 설교하면 고등학생 딸이 통역을 하기도 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딸이 직접 수련회를 인도했다. 


이 미국에서 교회 일을 아이들과 같이 했는데 나중에는 저들이 더 열심히 하면서 한마음이 된 것이 큰 복이었다.


  “채찍으로 때려도 죽지 아니하리라(잠 23:13).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으리라.(눅 6:26)”라는 성경 말씀은 아들이 그런 말씀이 어디에 있느냐고 해서 내가 찾아 보여준 말씀이다. 아이들이 칭찬을 너무 많이 듣고 자랐고 “우리들이 이만하면 되지 엄마는 너무 해요.”라고 해서 내가 보여준 말씀이다.


  딸 둘은 아빠와 엄마의 설교 말씀이 은혜롭고 최고라고 하는데 아들은 아빠의 설교가 너무 율법적이고 독재를 한다고 해서 아들하고 많이 다투며 한밤중에 교회에 가서 울며 기도한 적도 있었는데 아들과 그렇게 다투었던 것이 참 소중하고 그립다. 아들이 나름대로 교회를 생각하고 교회 부흥을 위해서 엄마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니 생각하면 기특한 일이다. 


지금은 멀리 뉴욕에 떨어져 살며 엄마보다 아빠에게, 자동차도 사드리고 책 출판 비용도 드리고 애를 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우리 집은 한국 연속극 비디오,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는데 좋은 프로는 같이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도 좀 된다. 


개척교회를 하며 아이들만 집에 두고 많이 다녔는데 그 대신 아이들에게 만화책을 빌려다가 주어 읽게 하여 한국어를 배우게 한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일기도 쓰게 하고 저녁에 와서 잘못 쓴 글씨를 고쳐주었는데 ‘불고기, 잡채가 먹고 싶다. 그러나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보라고 아들이 써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내가 많이 잔소리한 것은 전화를 너무 길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벽예배에 나오라고 강요한 것이었는데 그래서 막내딸까지 다 서둘러 멀리 도망을 갔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닮아서 저들은 올빼미형으로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하고 전화를 하고 잠을 안 자고 새벽에는 못 일어난다. 아빠는 20세에 예수를 믿기 시작해서부터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녔고 하나님이 새벽에 도와주신다고 했으니 너희도 새벽기도르 해야 한다고 하면 동의를 하면서도 못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또 견딜 수 없는 것은 대낮에 낮잠을 퍼지게 자는 것이다. 밤늦도록 안 자니 자연 대낮에 잠을 자게 되는데 그 모습을 보기가 싫었다.

 

  아들이 11학년 여름방학에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을 때에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페인트하는 사람을 구함’이라는 간판을 길에서 보고 전화번호를 써서 아들에게 주니 아들이 전화를 해서 다니게 되었다. 


“엄마, 나 엄마 때문에 높은 꼭대기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어요.”라고 하며 티셔츠와 바지를 온통 페인트칠해가며 한 여름 다니고 돈을 벌었다. 


딸들도 새벽에 신문 배달도 했고 햄버거, 피자가게에서 일하며 부지런히 살았고 게으른 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뉴욕에서 막내딸과 아들이 너무나 바쁘게 사는 것이 불쌍하다는 마음이 든다.


  교회 집사님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이들에게 비싼 게임 기계를 사주겠다는 것을 사양했는데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남들은 몇 개씩이나 가지고 있고 그 집에 가면 재미있어서 열심히 노는 것을 보기도 했다. 나의 주장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따라가지 말고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가도록 좀 엄격히 길렀으면 하고 바란다. 


부모부터 텔레비전을 떠나 아이들과 대화를 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부모가 너무 바빠서 대화를 못했다고 하고 나도 학교에 다니고 심방을 하면서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못했겠지만 만족한 가정이 어디에 있겠는가? 유대인의 모범 자녀교육을 강연하는 목사님 가정의, 아들의 대학원 친구도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고민을 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인생이란 온전한 만족은 없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부모의 영향력 아래에서 부모를 닮고 나중에 세상에서 고생하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기르며 부모를 이해하게 되리라. 


집을 떠난 아이들이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자기가 다니는 담임목사님들의 사랑 받는 것을 보며 나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으려 한다. 내가 애쓰고 뿌리는 것 30, 60, 100배로 결실하는 것을 믿으며 그 증거는 나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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