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한밤중의 물난리1 - 시애틀한인문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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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칼럼] 한밤중의 물난리1 - 시애틀한인문학칼럼

이성수(수필가. 서북미문협회원)


깊어 가는 겨울밤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그동안 조용했던 화재경보기(alarm)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85세대가 사는 아파트라 가끔씩 경보기가 울린다. 경보기 소리는 다른 집보다 3배나 커서 깜짝 깜짝 놀란다. 


3배나 큰 이유가 있다. 8년 전에 어느 할머니가 냄비를 전기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깜박 잠이 들었다. 냄비가 타서 연기가 나는 바람에 화재경보기가 울렸는데 소방관이 와서 보니 귀가 어두워 듣질 못하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킹 카운티(ᆞking county)주택국은 아파트에 입주하고 있는 노인들을 배려하여 경보기 2대를 더 설치하였다. 아파트의 침실, 화장실, 거실에 3대의 고성능 경보기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예고도 없이 빽~!빽~! 하고 크게 경보기가 느닷없이 울려대면 성한 사람도 소스라치게 깜짝 깜짝 놀라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마 임산부가 이 소리를 들으면 틀림없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갈 것이다.


실지로 어느 할머니 입주자는 이 소리에 놀라 가슴이 뛰고 숨이 차는 증세가 생겨 이 아파트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다.


이 아파트는 주거 환경이 쾌적하고 H마트가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어 생활이 편리하다. 입주를 신청하고 5~6년을 대기해도 입주하기가 어려운 이 노인 아파트를 마다하고 떠나간 것이다.

 

킹 카운티 주택국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주민들에게 소방에 대한 세미나를 실시한다. 


주로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의 매뉴얼(manual)을 설명한다. 이 매뉴얼은 ‘경보기가 3분 이상 울리게 되면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선다. 입주자들은 계단을 통해 밖으로 대피하여야 한다. 3분 이상 경보기가 울려야 소방차가 긴급 출동한다’로 되어있다.


내가 이 아파트로 입주한 지가 20년도 넘는다. 그 동안 실수로 인해 경보기가 세 번이나 울려 소방차가 출동한 일이 있다. 

  

한번은 냄비에 사골 뼈를 전기레인지에 올려놓고 고는 중 냄비 생각은 까맣게 잊고 외출을 하였다. 국물이 졸아 냄비가 타면서 경보기가 울렸다. 


그때 나는 밖의 정원 텃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6층에 사는 이웃 아파트 아줌마가 다급하고 큰소리로 

“605호실에서 연기가 나 알람이 울리고 있어요!. 빨리 가보세요!~.”라고 하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나 아차! 하고 6층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경보기 소리는 어서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듯 크게 울렸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1분도 안 걸리는데 계단으로 올라가니 숨이 차고 힘이 들었다.


얼른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경보기 소리가 귀가 따갑게 울리고 하얀 연기가 자욱하여 시야(視野)를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빨리 전기레인지쪽으로 갔다. 냄비는 쉴 새 없이 하얀 연기를 토하고 있었다. 마치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벌겋게 타고 있는 냄비를 잽싸게 행주로 감싸서 설거지통에 내 동갱이 쳤다.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리고 전기 스위치를 껐다.

나는 문을 모두 열어 연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이때에 소방관이 들이 닥쳤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였다. 소방관은 가지고 온 대형 선풍기를 틀어 단번에 방안 공기를 밖으로 순환시켰다. 방안은 온통 머리카락 타는 냄새로 가득 찼다.


연기가 빠지자 소방관은 갔지만 방안의 냄새는 이틀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종이에 “불조심! 전기레인지”라고 붉은 사인펜으로 크게 써서 현관문에 붙여놓고 외출할 때는 꼭 확인을 하였다. 


경보기가 세게 울렸다. 입주자들은 모두 수건으로 귀를 막고 집안에 서 대기하고 있지 밖으로 대피하지 않았다. 코로나 19 때문이다.


250여개의 고성능 경보기가 6층 85세대 방에서 일제히 섬광을 번쩍이며 악머구리소리처럼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3분이 지나 소방관이 도착하여 조치하면 30~40분 내로 일을 끝낼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특이하게 한 시간도 넘게 경보기가 울렸다.


나는 불안하여 복도로 나가려고 현관문을 열고 보니 이게 웬일인가! 복도에 물이 도랑물처럼 흐르는 게 아닌가!


대낮처럼 밝은 조명이 카펫이 깔려있는 복도 위를 반사하였다. 복도 좌우로 7세대 모두 14세대집 안으로 물이 침범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웃집 현관문을 노크하여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물을 급한 김에 쓰레받기로 퍼서 대야에 담아 버렸지만 집안의 카펫을 적시며 스며드는 물은 당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장마 때면 연중행사처럼 물난리가 나 집안에 들어온 물을 퍼내느라 고생하는 TV장면이 떠올랐다.


경보기를 울리게 한 문제의 집은 나의 집과 세 집 떨어져 있다. 냄비가 타서 경보기가 울린 게 아니고 촛불을 켜 놓고 자다가 옆의 가연성 물질에 옮겨 붙어 일부 방안 세간이 타는 연기로 인한 것이었다.


소방관이 도착할 때는 화재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었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여 물이 나오고 수돗물을 틀어 진압을 하였다. 그 물이 바닥으로 고이고 계속 차고 넘쳐 복도로 도랑물을 이루며 흘러갔다.


방의 화재가 진압 된 후 젊은 소방관이 복도 물을 제거했다.


나는 아내와 같이 수건이란 수건을 모두 꺼내어 거실과 방안에 있는 카펫의 물을 훔쳐냈다. 한번 물을 흡수한 카펫의 물기를 제거하는데는 많은 힘이 들고 시간이 소요되었다. 집에 있는 선풍기를 틀어 방바닥을 건조시켰다. 


소방관들은 복도의 물을 제거하자 열대도 넘는 대형 선풍기를 틀어 카펫을 건조시켰다.


복도고 방이고 모두 밤을 꼬박 새며 새벽까지 작업을 하였다. 방과 복도가 정상이 되는데 사흘이 걸렸다. 

  

한밤중에 물난리를 겪고 잠을 설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사람의 부주의로 이웃들에게 피해와 불편을 주지 않도록 우리는 각자 늘 조심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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