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쿠킹타임(2) - 시애틀한인뉴스커뮤니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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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나칼럼] 쿠킹타임(2) - 시애틀한인뉴스커뮤니티칼럼

<지난 호에 이어>

물론 배운 뒤로는 거의 매번 감자탕 요리만을 해 먹었으니 감자탕에 지친 우리 가족들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해대어서 나의 감자탕 요리는 잠시 뒤로 가버리고..(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매번 같은 음식을 만들면 지쳐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는 한 번 열중하면 그것이 완전해질 때까지 해보는 것을 좋아하니까!

오래 전에 벨뷰 타운타운에 스치완요리를 아주 잘하는 중국음식점이 있었는데 우리 가족은 중국음식인데도 음식이 전혀 느끼하지가 않고 매콤하면서도 알싸한 향내가 나는 이 집의 음식을 아주 좋아했었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음식점 주인이 이 음식점을 팔면서 다른 사람이 인수했는데 주방장도 바뀌었는지 예전의 그 음식이 아니어서 그 뒤로는 이 집하고의 인연은 여기서 마치고는 우연히 이 집에서 주방보조를 하던 중국인 아저씨를 시애틀 다운타운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나는 이 친구에게 (아는 체를 하면서) 차 한잔 함께하자며 근처 찻집으로 데리고 가서는 사천요리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인 장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하고 만드는지를 물어보니 이 주방보조 아저씨 이제는 주방보조 안 한다며 고향(대만)으로 돌아간다며 나에게 재료와 비법을 알려주었었다.

이날 이후로 우리 집 음식엔 사천요리가 늘 등장했었다.

내가 완전히 그 맛을 낼 때까지!

물론 음식을 먹어야 하는 우리 가족들은 처음에는 행복하다가도 나중에는 그만 좀 하시죠?

이렇게 해서 사천요리의 비법도 알게 되었다.

물론 집에서 요리를 하면 스토브 가화력이 세지가 않아서 늘 그 맛이 제대로 나오지는 않지만  얼추 비슷하게 맛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도 횡재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요리를 좋아하면 요리사가 되었으면 좋았지?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어릴 때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고 우리 엄마 아버지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부엌에는 얼씬도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엄명에 아예 부엌을 드나드는 것조차 어려웠으니..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워낙에 만나는 고객들의 삶의 수준이 기가 막힐 정도이기에 온갖 약물 등에 취하고, 정신적인 질병 때문에 아무 때나 이상행동을 보이고 전혀 상관 없는 딴 말들을 하며 상황에 맞지 않은 행동들로 사람들을 놀래키고…

오늘은 자기 머리에 가발을 어디에서 구했는지 가발을 두 개나 올려 쓰고는 눈에는 눈썹을 어떻게 연결해서 붙였는지 서너 개의 인조 눈썹을 붙이고 얼굴엔 색조 화장으로 범벅을 하고 온 나의 아프리컨 어메리컨 여성 고객.

오늘 햇볕은 쨍쨍했어도 다운타운의 기온은 차가워서 재킷을 입지 않으면 추위가 스며드는데 상의는 브라자만 걸치고 그 위에 얇은 이불보를 뒤집어쓰고 아래 하의는 실종되었고 보자기 몇 개를 연결해서 둘러 싸매고 온 내 고객.

지난주에 트랙 폰(정부에서 마련해준 무료전화)를 잃어버렸다며 다시 새 전화를 달라며 어거지를 부리다 못해 뗑깡을 부리는 망할 고객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냥 내 사무실로 올라와 버리니…

아래층에서 그야말로 길길이 뛰고 난리인 내 고객

프런트데스크에서는 레지나 경찰 부를까?

아니, 미안한데 경찰 부르지마 내가 다시 내려갈게.. 

다시 내려가 너 다시 난리 치면 경찰 부를 거야 반협박에 공갈까지(우리는 이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일에 협조적이지 않다)

첫째 바쁜 경찰들을 괴롭히고 싶지가 않다

두 번째 이런 일로 경찰들이 잘 오지를 않는다

세 번째 이들이 뗑깡부릴 곳은 우리들 앞에서이기 때문이다.

뗑깡을 부리더라도 지나면 금세 잊어먹는다.

이들과 몇 번씩 이러한 미팅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머리가 아프고 몸도 지친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을 하다 보니 우리 몸과 마음이 지치는 거다.

고객 중에 아버지가 유명한 비뇨기과 의사인 고객이 있다.

형도 유명한의사인데 막내아들이 정신분열 증세에 어티즘이 있다. 

정신적인 질병 때문에 소통이 불가능하니 아들의 행동을 막지를 못해 결국은 아들이 하는 대로 놔두었더니 정신병이 심해져서 거리를 헤매는 홈리스가 되고는 말았다. 

물론 당연하다.

절대로 집안에서 캐어할 수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지금은 우리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임시 하우징에 들어가 살고 있는데 이 고객은 집에서 보내주는 돈 때문에 정부의 보조를 받지 않고 개인 페이를 하고 있다. 

가끔씩 가끔씩 형들이 우리에게 전화를 한다.  

전혀 찾아오지를 않는다. 그러면서 얘기를 한다.

아무래도 동생이 창피해할 것 같아서 못 찾아온다고! 

물론 아하 그렇구나! 하지만 때로는 당신이 창피한 것은 아니구? 라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이들은 사회에서, 집안에서 버림을 받은 것이다. 

버림받은 이들이 만나고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곳은 우리들인 것이다. 

우리들이 이들을 보통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이들을 도와야하는 것이다. 

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우리도 때로는 지쳐서 쓰러진다. 

오늘이 그랬다.

오늘 만난 고객이 5명. 그중 두 명이 그야말로 손에 칼만 안 잡았지 칼춤을 춘 것이다.

물론 남자직원들이 지켜보아 주고 옆에서 함께해 주었지만 이들과 이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너무 지쳐 버려서 프런트데스크에 나 정신안정이 필요해 잠시 나갔다가 올게 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와서 사무실 근처에 있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안에 돌면서 멍 피플들이 팔고 있는 예쁜 다양한 꽃들에 감탄을 하고 부쩍 많아진 여행자들의 모습도 바라보고 파이크 마켓 안에 유명한 휘쉬앤칩레스토랑에 들러서 신선한 생선튀김도 사 먹으면서 복잡해진 머리를 식힌 다음 다음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할 수가 있었다.

내가 음식을 아니 요리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자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끝을 맺고 싶음 때문이리라 생각이 든다. 

고객들을 아무리 만나고 상담을 해보지만 이들과의 일들은 전혀 끝이 나지를 않는 일이다.

언고잉!

정신질환환자, 중독자들이기에 지속적으로 발병도 하고 좀 나아지기도 했다가 또다시 뒤로 퇴보하고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런 분들과 일을 해온 나에게 그러니까 나에게는 무엇인가 끝맺음을 낼 수가 있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신선한 재료를 구입하러 다니고 재료를 펼쳐놓고 어떻게 요리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면 내 마음속에는 음식에 대한 그림으로 이미 부담스럽고 무거웠던 머리가 기쁜 마음이 되어진다. 재료를 구입해서 요리를 하고 나면 짠하고 음식이 장만되고 그 결과는 가족들이 즐겁게 둘러앉아 먹을 수 있으니 또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본 이들이 평을 한다. 

맛이 있다, 맛이 없다. 그리고는 끝마무리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많은 형제 중에 막내여서인지 어릴 적 오빠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지만 음식을 만들 기회는 거의 없었다. 

엄마 아빠가 공부를 해야 한다며 기회를 잘 주지를 않았지만 나는 기회만 되면 라면을 끓여서 오빠들에게 바쳤는데 그때부터 오빠들은 나의 라면 솜씨에 감탄을 하고는 했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큰언니는 내가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완성된 음식들의 사진을 보내면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우리 막내가 언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지? 

언니는 메뉴 선정과 요리방법 등에 대해서도 물어오기도 하는데 언니와 오빠들이 볼 때에는 너무나 신기한 동생이다. 

자기들이 기억하기엔 막내가 뭘 할까 싶어 보이는데 말이다. 나의 요리 배우는 열정은 과거 총영사관 주최로 후드앤아카데미 원장님과 그 팀들이 이곳 시애틀에 와서 한식 요리를 3주간 가르쳤었는데 나는 직장도 쉬어가며 음식을 배웠었고 그 이후로 캘리포니아에서 단국대학교 윤숙자 교수님이 3주간의 요리 교육에 거금을 들여가며 직장도 휴가를 내서는 열심으로 요리 수업을 받았었고 스페인에 가족여행을 가서는 스페인 요리 수업도 받았고 이탈리안 요리사에게 이탈리안 요리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홈리스 고객들에게 사회성과 혹시라도 자립들을 하게 되면 각자 음식을 해먹을 수 있게 하려고 쿠킹교육 테라피를 매주 했었는데 그때마다 참여하겠다는 홈리스들이 많아서 몸을 깨끗하게 씻고 손톱이 정리가 된 사람, 그리고 옷차림이 단정해야 하는 이들로 뽑아서 1년 동안 쿠킹테라피 교육을 하면서 이들에게 음식 재료를 고르는 법, 불 조절하는 법, 양념 사용방법, 음식을 통하여 서로 사회성을 길러가는 법 등을 배울 수 있도록 했었다. 

물론 코비 때문에 중단이 되었지만 코비가 떠나고 나면 다시 시작하고픈 나의 쿠킹 테라피 시간이었다.

쿠킹은 나에게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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